[열린광장] 지구가 좋아하는 사람
“엄마는 지구가 좋아하는 사람이야.” 나의 딸이 가끔 하는 말이다. 내가 하는 일이 못마땅해서 에둘러 하는 놀림이라고 여겼다. 남들이 기피하는 쓰레기 수거 같은 지저분한 일을 열성으로 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좋게 보일 리가 없다. 하느님은 피조물 중에서도 으뜸인 지구를 장장 6일 동안 정성을 다해 지으셨고 인간을 흙으로 빚으신 후 당신의 거룩한 숨을 불어 넣으시어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시간상으로 인간은 하룻밤의 꿈처럼 태어나서 하느님 최고의 창작품인 우주 만물을 관리하도록 청지기 직분을 받게 되었다. 인간들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고귀한 신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고귀한 직분을 망각하고 인간들은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너도 함께 바닷가에 나가서 쓰레기를 주우면 좋겠다” 하니 “지금은 아니야 엄마, 병원 일이 너무 바빠요. 언젠가는 꼭 할거야”라고 답한다. 대부분의 사람도 그렇게 말한다.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는 건 알겠지만 왜 못한다는 건지는 이해하기 어렵다. 일회용 컵 대신 물통과 텀불러를 들고 다니는 것이 바쁜 것과 상관이 있을까. 플라스틱 쓰레기가 마지막 당도하는 곳이 바다이다. 바다는 마치 구역질을 하듯 몸살을 앓고 있다. 파도는 끌고 온 쓰레기를 토해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은 다시 끌어안고 만다. 인간들이 썩지 않는 플라스틱을 남용하는 한 바다의 숨막힐듯한 고통은 끝없이 지속된다. 나는 20여 년간 허리 통증을 앓았다. 만성 기관지염에 결핵성 늑막염과 2번의 폐렴을 앓았다. 매년 겨울이 되면 환자처럼 살아가는 날이 길었다. 하지만 몸을 추스린 후 23년간 바다와 공원 동네 길 학교 앞 발길 닿는 곳의 쓰레기를 주웠다. 몸이 아파서 할 일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었던 짧은 인생, 살면서 더럽혔던 곳이나 치우다 가야겠다는 일념에서다. 선한 것을 희망했고 지구에 도움될 일을 나의 일처럼 실천하면 지구도 인간의 뜻을 감지한다. 인간이 자연을 감지하듯이 말이다. 자연과 인간은 서로 치유의 힘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상호작용의 관계가 있다. 흙은 인간의 본향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자연을 착취하려고만 하는 탐욕은 의로움을 잃게 된다. 사람이 먼저 알아차려 자연에 손을 내밀어 화해를 도모하면 늦지않는 기적을 만나게 된다. 점진적으로 좋아져 가는 건강, 활기찬 열정, 질서 잡힌 생활 방식으로의 전환이라는 치유다. 그러나 내가 체험한 모든 변화가 모두에게 공감을 얻었던 건 아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유난히 고통을 느낄 때가 있다. 행사 때면 빠질 수 없는 쓰레기 때문이다. 먹고 버리는 일회용 용기는 어떻게 폐기할 것인지 단 한 번도 문제 삼는 사람이 없다. 당연한 듯 버리는 권리를 행사할 뿐이다. 그럴 때 나의 양심은 마치 상처받은 것처럼 아프다. 지구와 자연 생태계가 앓고 있듯이,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딸은 초과근무는 예사고 병실마다 환자가 포화상태라고 한다. 자연과 함께 살지 못한 부작용들은 여러 질병으로 인간에게 돌아온다. 내가 기침으로 잠 못 이루던 그때의 시간을 다른 누군가가 겪게 될 고통의 시작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구는 모든 피조물의 공동의 집이고, 지속 가능한 미래의 희망이다. 지구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명명해주는 것은 최고의 찬사가 아닐지. 나의 묘지 석판에 새겨 주기를, 그날 지구가 좋아하는 별이 되어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 가슴이 두근거린다. 최경애 /수필가열린광장 지구 지구도 인간 그날 지구 플라스틱 쓰레기